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신분열증과 감각탈억제: 뇌는 왜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지 못할까?

by news8644 2025. 4. 29.

감각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창문과 같다. 그러나 모든 감각 정보를 다 받아들이면 뇌는 과부하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강한 뇌는 중요하지 않은 감각 정보를 '차단'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과정을 '감각탈억제(Sensory Gating)'라고 부른다.

 

정신분열증과 감각탈억제: 뇌는 왜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지 못할까?

 

하지만 만약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불필요한 감각자극까지 과도하게 인식하게 되고, 결국 인지와 행동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들은 감각탈억제 기능에 심각한 결함을 보인다. 이 글에서는 감각탈억제가 무엇인지, 기능 장애가 발생하는 원인, 그리고 정신분열증과의 구체적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1. 감각탈억제(Sensory Gating)란 무엇인가? 

감각탈억제는 뇌가 반복되거나 중요하지 않은 감각 정보를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우리의 주의를 보호하고, 중요한 자극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시끄러운 거리를 걷다가 대화를 할 때, 우리는 주변 소음을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상대방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이 바로 감각탈억제다.

감각탈억제는 주로 뇌간(brainstem)과 해마(hippocampus), 전두엽(prefrontal cortex) 등이 관여하여 이루어진다. 반복적인 소리 자극에 대해 뇌가 반응을 점차 줄이는 방식으로 측정되며, 이는 P50 억제 검사라는 생리학적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두 번째 자극에서 신경 반응이 감소하지만, 감각탈억제에 문제가 있는 경우 반응 감소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신경 반응 패턴은 특히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관찰된다.


2. 감각탈억제 기능 장애가 나타나는 원인

감각탈억제 장애는 뇌신경회로의 불균형에 의해 발생한다. 특히 콜린성 신경전달(cholinergic neurotransmission)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콜린성 시스템은 감각 정보의 여과 필터 역할을 하며, 아세틸콜린 신경전달물질이 핵심이다. 아세틸콜린 수용체, 특히 알파 7 니코틴성 아세틸콜린 수용체(alpha-7 nAChR)의 기능 저하는 감각탈억제 기능 저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감각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해마 부위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결함도 감각탈억제 장애를 악화시킨다. 해마는 새로운 정보와 기존 기억을 연결하고 분류하는 기능을 한다. 이 기능이 손상되면 중요한 자극과 비중요 자극을 구분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스트레스, 유전적 요인, 그리고 조기 뇌 발달 문제 등도 감각탈억제 장애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3. 정신분열증과 감각탈억제 기능 장애의 관계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감각탈억제 기능에 심각한 결함을 보인다. 이들은 불필요한 감각자극을 걸러내지 못해, 모든 자극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과부하 상태를 경험한다. 이는 혼란, 망상, 환청과 같은 주요 정신증상으로 이어진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정신분열증 환자는 P50 억제 검사에서 정상인 대비 뚜렷한 반응 감소 실패를 보인다. 이는 해마와 전두엽 네트워크의 통합적 기능 장애를 반영한다. 감각 정보의 과도한 유입은 뇌의 인지 처리 능력을 초과하게 만들며, 결국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능력 자체를 무너뜨린다.

흥미롭게도, 감각탈억제 장애는 정신분열증이 발병하기 전, 전구기(Prodromal phase) 단계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 이는 감각탈억제 기능 검사가 정신분열증 조기 진단이나 위험 예측에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감각탈억제는 단순한 부수적 증상이 아니라, 질병 발생의 핵심적인 생물학적 메커니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4. 치료적 접근: 감각탈억제 기능 회복 가능성 

감각탈억제 기능 장애를 치료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는 약물 치료다. 알파7 니코틴성 아세틸콜린 수용체를 활성화하는 약물들이 실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는 감각탈억제 기능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또한 인지재활훈련(Cognitive Remediation Therapy)도 주목받고 있다. 이는 환자들이 감각정보를 선택적으로 처리하는 연습을 반복하게 함으로써, 뇌의 정보 필터링 기능을 강화하는 접근이다. 실제로 특정 인지 훈련 프로그램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감각탈억제 기능을 일부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도 있다.

감각적 과부하를 줄이는 환경 조성 역시 중요하다. 소음, 조명, 사람 간 거리 등 외부 자극을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감각 과부하를 줄이고, 환자가 보다 안정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결론

감각탈억제는 우리의 뇌가 세상을 효과적으로 해석하고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이 실패할 때, 정신분열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감각 정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뇌는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현대 신경과학은 감각탈억제 장애를 정신분열증의 핵심 병리로 인식하고 있으며, 조기 진단과 치료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감각탈억제 기능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정신건강 분야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